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샘 페킨파, 1969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폭력의 피카소, 샘 페킨파 감독의 Masterpiece-

미국과 멕시코,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명과 야만,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떠도는 최후의 총잡이들에 대한 이야기





와일드 번치는 69년도 영화라고는 믿을수 없는 역대 최강의 총격씬을 자랑한다.

페킨파는 슬로우 모션을 비롯한 다양한 편집 테크닉으로 폭력을 미학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홍콩 느와르를 이끌어온 오우삼 감독, 헐리우드의 거장들 -마틴 스콜세지와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 등의

작가주의 감독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80-90년대에 그들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60년대 말에 페킨파가 해놓은거다.
아니, 60년대 말에 페킨파가 이루어놓은 성과가 아니면 그들의 성과도 없었을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의 Retrospective로 페킨파는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와일드 번치는 샘 페킨파의 대표작이다.

 

폭력미학에서 더 나아가 폭력 이면에 숨겨져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고찰이 진하게 녹아있는 작품이다.
뭐 때려부수기만 하는 영화이기만 해도 폭력씬 하나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 영화가 수정주의 서부극의 걸작이라고 불리는게
이 작품에선 왕년의 존 웨인 같은 멋진 카우보이와 총잡이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늙고 추악하며, 끝나가는 서부개척시대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사라져가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만이 등장할 뿐이다.
다른 서부영화들은 갈등의 당사자들만이 총질을 하지만 와일드 번치에서는 주인공들이 극 전개와 전혀 관련없는 민간인들을 방패삼아 총질을 해댄다.
물론 그 방패들에게 총질하는 인물들은 공권력의 편이다.
범법자들과 기존 공권력 모두가 사악한 살인자이고 그들의 폭력은 똑같이 독단적이고 파괴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일당을 쫓는 바운티 헌터들은 쏜튼을 빼고는 다들 악당이나 다름없는 추악한 녀석들 뿐이다.
영화 내내 페킨파는 이것을 강조하고...
첫 시퀀스에서 바운티 헌터들에게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마을의 책임자들이 이것에 대해 항의하러 오자
철도회사 책임자는 '우린 법을 대표하고 있소' 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 앞서 말한 공권력의 모순이 함축되어 있다.
대의명분이 살생의 비열함을 정당화 시켜주지는 못한다.
즉, 페킨파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켜주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권력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근대를 상징하는 국가권력과 자본주의가 각각 군대와 철도회사로 등장한다.
그리고 근대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주인공 일당-을 밀어낸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은 더 이상 그들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던 개척시대가 아니었다.




와일드 번치의 첫 시퀀스 스틸컷이다.
첫 시작장면부터 충격적이고 불쾌하다.

주인공들의 최후를 암시하는 듯...
아이들이 전갈을 개미떼에게 먹이로 던져주고 결국엔 불을 붙인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불길한 초반부가 지나면 행진하는 시민들과 철도 사무소에서 강도짓을 하고있는 주인공 일당이 교차 편집되어 긴장감을 더한다.
주인공 파이크 일당은 그들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채고...
철도회사에 고용되어 주인공 일당들이 강도짓을 하길 기다리고 있던 주인공 파이크의 옛 친구 딕 쏜튼 일당과 총격전이 시작된다.
민간인들을 방패삼아 사무소를 뛰쳐나가는 파이크 일당.


총알과 유탄이 튀고, 피가 먼지 날리는 황량한 거리에 튄다.
행진하던 사람들은 도망가다 흉탄에 맞고 쓰러진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 파이크 일당에게 남은 것은 은 대신 쇳조각들이 들어있는 자루들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딕 쏜튼 일당이 현상금을 노리고 추격하는 상황. 철도회사에 제대로 낚인거다.
파이크 일당은 멕시코로 도망치지만 거기서도 상황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파이크 일당은 개척시대의 미덕과 가치인 '의리'-이젠 더 이상 누구도 지키지 않는-를 지키기 위해
멕시코 반군에 붙잡힌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모두 허무하게 총탄 앞에 스러져간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악인들-뒤쳐진 동료를 잡히지 않기 위해 서슴없이 죽이기도 한- 인 주인공 일당이 삼류 쌈마이 낭만을 위해 죽을 자리로 걸어간거다.
그게 멋지다 생각하나보다.


마지막 총격전 장면은 정말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5분이다. 압도적이라는 말 밖엔 나오지 않는다.

쏜튼 일행은 멀리서 쌍안경으로 주인공 일당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영화 내내 주인공 일당의 입장과 공권력인 철도회사의 입장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던 쏜튼은
연민이 섞여있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 채 싸움이 끝난 아수라장을 바라본다.


페킨파는 몽타주, 슬로우모션, 클로즈업 등 다양하고 현란한 테크닉으로 폭력을 심미적으로 그려내어
대의명분을 위한 처절하기 그지없는 주인공들의 몸부림이 역설적으로 비극임을 나타냈다.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가, 계속 무언가가 어긋나 있는 듯해서 긴장감과 불안감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결국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선과 악의 경계없이,
방향없이 난사되는 기관총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 아비규환이 연출된다.


마치 페킨파가 이게 영화에서만 그런게 아니라고 암시하는 듯이...
(60-70년대 미국 사회를 생각해 보자)

결론은, 내가 이때까지 적지 않은 영화를 보아왔지만 이만한 명작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이 새롭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명작의 향기는 영원한 법이다.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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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틀 | 2008/01/06 23:52 | 명작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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